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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El Arte de Volar

 

안토니오 알타리바 (Antonio Altarriba) 지음

킴 (KIM, Joaquim Auberti Puig-Arnau)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2009

 


 

향수와 분노라는 공통된 감정이 우리를 연결했다. 우리란, 그 위대한 사상을 따라 행동한 소수의 생존해 있는 사람들과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세대의 가족들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도 있다. 자살한 부모의 자식들, 끔찍한 시골의 삶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 동업자에게 사기 당한 사람들, 뒤늦게 이혼한 사람들, 양로원에 버림받은 사람들... 더 넓게 보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20세기는 구체제가 몰락하고 새로운 체제를 염원하는 이념과 사상들이 꽃피우고 충돌하던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이런 이념들은 서로 공존할 수 없었기에 곳곳에서 수많은 피의 희생을 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만화의 주인공인 안토니오도 이러한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인물로 노년이 되어 양로원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창틀에 올라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뛰어내리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안토니오는 스페인의 한 농가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농사 일하기를 강요받았지만 그는 자동차 운전과 도시를 동경하던 청년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의 폭력과 친구의 죽음의 영향으로 도시로 떠난 그는 마침 격동하던 세상과 마주합니다.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된 스페인은 이념의 용광로가 되고 있었습니다. 공화주의자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 여러 정치단체들이 광장 곳곳에서 자신들의 이념을 전파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는 머물던 하숙집에서 아나키스트들과 어울리면서 아나키즘을 처음 접하게 됩니다. 아나키스트는 무정부주의자를 지칭하는 말로 국가와 법 또는 감옥, 사제, 재산 등이 없는 사회를 추구하며,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고 그에 대한 모든 억압적인 힘을 부정한다고 사전에는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정국 와중에 군부의 쿠데타로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고 프랑코 장군이 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프랑코 진영의 군대에 징집된 그지만 프랑코파의 파시즘을 참을 수 없던 그는 탈출하여 의용군에 합류하여 아나키스트 동료들과 함께 투장의 삶을 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투쟁은 실패로 끝나고 프랑코 정권하의 스페인으로 돌아가 현실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동료 아나키스트들의 변절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돈에 굴복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사업을 이루고 가정을 이루면서 젊은 날의 이상과는 멀어진 삶을 살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사업 동료의 배신으로 빈털터리가 된 이후로는 사실상 노년까지 불행한 삶을 이어갑니다.

 

아내와 이혼 후 양로원에 들어온 안토니오는 양로원에서도 좌절과 무력함은 계속됩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된 스페인이지만 이제 노년이 된 그와 동년배들에게는 그것조차 강요된 또 다른 사상으로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행복과 긍정과는 먼 일생을 살아온 그들에게 갑자기 요구되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은 그들로써는 이해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만화의 작가는 안토니오의 아들로 소설가였던 그는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재조명하여 명예를 회복하고자 이 만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자신과 주인공인 아버지 안토니오와 동화되는 화법을 사용함으로써 안토니오의 깊은 내면에 다가가고 정체성을 부여하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시도가 읽는 독자들도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 감정적으로 더 동화될 수 있었습니다. 안토니오는 시대의 흐름에 최선을 다해왔고 자신이 옳다고 믿은 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결국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고 본인 스스로도 배반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시련이 어느 순간부터 죽음만이 자신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라 느끼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들의 실패가 개인의 실패가 아닌 시대가 만든 실패임을 현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토니오뿐만 아니라 20세기 시대의 희생양이 된 세대와 고통을 공유하는 모든 분들께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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