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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여행

Der Wunderbare Massenselbstmord

 

아르토 파실린나 (Arto Tapio Paasilinna) 지음

김인순 옮김

 

1990

 


 

죽음의 문턱에 서보았던 사람만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 진정으로 뭘 의미하는지 깨닫는 법이다.

 

 

이 책을 보다 보니 과거 인터넷에서 봤던 핀란드로 이민 가서 핀란드로 오길 추천하는 트위터 글이 생각났습니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보였던 글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암울해지고 심상치 않아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었는데요. 핀란드는 과거 자살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자살률이 높았다고 하며, 인구 550만 명 중 40만 명이 우울증 약을 처방받는다고 합니다. 책의 첫 문장에서부터 이러한 핀란드인의 고질적인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작합니다.

 

사업가 온니 렐로넨은 여러 번의 파산 위기와 파탄 난 결혼 생활로 심각한 우울증에 고통받는 사람입니다. 결국 자살하고자 결심을 하고 권총 한 자루를 들고 낡은 헛간을 찾습니다. 공교롭게도 그곳에선 이미 목을 매달고 자살을 시도하던 사람이 있었고, 결국 두 사람의 자살 시도는 실패로 끝납니다. 자살을 시도하던 또 다른 인물은 켐파이넨 대령으로 부인의 죽음과 부대에서의 소외로 우울증을 겪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 자살 계획을 보류하고 서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친밀한 사이가 됩니다. 두 사람은 당장 자살하는 일보다 좀 더 보람 있는 일을 해보기로 의견을 모으고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집하여 자신들처럼 솔직한 이야기를 서로 나눠 자살을 막고 삶을 의욕을 불러일으키거나, 반대로 안되더라도 마지막을 함께 보내며 집단자살을 기획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들은 신문 광고로 전국의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을 모아 세미나를 열고 열렬한 추종자들과 함께 그들의 마지막을 장식할 장소를 향해 여행을 떠납니다.

 

집단 자살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아이러니하게 소설은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자살자들은 자신들이 꿈에 그리던 멋진 곳에서 생을 마감하고자 하여 다 같이 여행을 떠나고, 여행을 하며 거치는 곳마다 생애의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에 그 누구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자살여행자들은 자신의 암울했던 삶에서 벗어나 여행이 길어질수록 자신을 죽음으로 몰았던 일들이 사소하게 느껴지고, 서로에게 위안을 얻으며 세상은 생각보다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함께 여행하면서 새로운 사랑을 찾기도 합니다.

 

자살이라는 불편하며 금기시되는 주제로 이렇게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나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아마도 저자는 우울증과 자살 충동은 혼자가 아닌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소설을 집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걱정과 근심은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어진 자살여행자들은 현재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여행의 즐거움에 더 집중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풍파 속에서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삶의 희망을 잃을 때를 마주하게 될 수 있습니다. 책 속의 자살여행자들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운 환경, 새로운 관계,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본다면 어디엔가는 손을 뻗어줄 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새로운 시각으로 돌파구를 찾게 될지 모른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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