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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홍명희 지음

 

1928

 


 

꺽정이 앞에 세 갈랫길이 놓여 있었다. 한 갈래는 식구들이 갇혀 있는 옥으로 들어가는 길이니, 이 길로 가면 적어도 극변이나 원악도를 안 가지 못할 것 같고, 또 한 갈래는 식구들을 버리고 정처없이 떠나가는 길이니, 이 길로 가면 나중 돌아올 기약이 망연할 뿐 아니라 돌아오게 되더라도 식구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 같고, 마지막 한 갈래는 식구들을 옥에서 빼내가지고 청석골로 달아나는 길이니, 서림이가 가르치고 유복이가 끌고 또 천왕동이가 권하나 이 길로 가면 막이 적굴에 빠져서 도적놈으로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라, 세 갈랫길이 다같이 꺽정이 마음에는 좋지 않았다.

 

 

임꺽정은 조선 명종 시대에 실제로 존재했던 도적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세력이 컸다고 합니다. 경기도 양주 태생의 백정이었던 임꺽정은 황해도 청석골에 본거지를 마련하고 도적질을 하였으며, 토벌을 위해 파견된 관군과도 맞붙어 승리하는 등 나날이 늘어가는 기세에 명종이 직접 어명으로 임꺽정 체포령을  내릴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잡히지 않다가 임꺽정의 참모였던 서림이 붙잡히면서 임꺽정과 그 잔당들을 체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이러한 임꺽정의 일대기를 모티브로 벽초 홍명희 선생에 의해 집필된 소설입니다. 1928년부터 1939년까지 약 10년간 조선일보에서 연재되었으며, 조선 민중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린 한국 근대소설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옛 언어 표현이 잘 묘사돼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실제로 인물 간의 대화 또는 서술에 있어 현대에 사용되지 않는 다양한 단어와 표현이 많아 별도의 단어 해석이 없으면 읽기 난해한 수준입니다. 그만큼 정말 조선시대 한복판을 체험하는 듯한 생생함도 전달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완결되지 못하고 임꺽정이 대대적인 토벌대 투입에 맞서 자모 산성에서 항전을 도모하는 도중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되면서 소설의 연재가 중단되어 이어지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초반 2, 3권은 임꺽정 등장 없이 사전 배경에 대한 설명 위주로 진행되며, 마지막 10권은 절반이 작가의 말과 해설, 단어 해설로 채워져 실질적으로 느껴지는 임꺽정의 활약은 더 적게 느껴지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의형제 편으로 임꺽정과 6명의 의형제들이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특별한 재주들을 가진 개성 있는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참 재밌습니다. 이런 개성 있는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청석골패를 이루며 함께 했을 때는 개개인의 개성과 유쾌한 면이 크게 줄고 그저 임꺽정의 수하로서 명령만을 따르는 모습만 나와 재미가 반감되는 점은 아쉽습니다.

 

아마 사회주의자였던 저자 홍명희는 조선의 하층계급인 백정 출신이 자신과 같이 사회적으로 핍박받는 이들을 모아 기득권층에 저항하는 임꺽정의 활약에 큰 매력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보통 임꺽정은 의적이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도 그렇고 소설상에서도 임꺽정이 의적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진 않습니다. 임꺽정이 조정과 관아를 상대로 싸우고 저항한 것은 사실이나 탐관오리를 처벌하고 핍박받는 민중을 위해 재물을 분배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재물을 자신들이 취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힘과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으며, 오히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민가를 협박, 갈취하고 잔혹한 짓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청석골의 우두머리로서의 임꺽정도 너무도 자기중심적이며, 권위적이고 충동적이었기에 좋은 리더십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장사로서 힘과 카리스마로 청석골의 대도적이 된 임꺽정은 이러한 면모들로 도적 그 이상의 개인적인 평가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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