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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종필 증언록

저자   김종필

초판   2016년


 

나는 정치를 허업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실업하는 사람들은 욕망과 이기심을 바탕으로 선택을 하지만 허업하는 사람은 사를 버리고 공을 취해야 한다. 정치의 과실은 정치인 자신이 아니라 국민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게 정치인이 정치를 하는 이유이고, 국민이 그들을 믿고 따르는 이유다.

 

 

  김종필 전 총리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로서 그가 직접 남긴 회고록은 역사적 사료로서도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에 참전, 이후 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권력의 중심에 가장 가깝게 있었던 인물이자, 40여 년간 대한민국 정치사에 크고 작은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고록이 아닌 증언록이라 이름 붙인 까닭은 서문에서 밝혔듯이 자화자찬과 자기합리화에 빠지지 않고 직접 듣고 느낀 사실만을 증언하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5.16 군사정변으로 시작하는 그의 이야기는 거사를 앞두고 결연한 자세로 궐기 취지문을 작성하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당연히 박정히 전 대통령의 주도하에 일어났다고 생각했으나, 박정희도 그가 리더로 옹립하고 실질적인 설계와 주도는 그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그에게는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국운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전후 혼란한 상황 속에서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제 2 공화국이 출범하였으나 장면 내각하에서 정치적 혼란 속에 리더십은 실종되고 국가 정책은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몸담고 있던 군에서는 고위 장성들의 부정, 부패, 무능을 직접 경험하고 이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정군운동을 주도하였으나, 하극상이라는 명목으로 강제 예편된 상황이었습니다. 서른 다섯의 나이였던 그는 부패하고 무능한 구세대들에게 국운을 맡기는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질서를 주도하기로 마음먹습니다. 5.16 군사정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편이었으나, 이 책을 읽고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부터는 저자의 표현대로 혁명으로 표현하겠습니다.)

 

  그는 혁명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계획과 정책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있었습니다. 쿠데타가 성공하고 그는 바로 거사 이전에 구상한 정부 구성안으로 개편하고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맡습니다. 대통령 빼고 안 해본 직책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이인자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혁명의 실질적 주도자였음에도, 자신이 기획한 혁명이 국가 재건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스스로 보조자의 역할을 자처하였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중앙 권력의 욕심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물러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줍니다.

 

  놀라웠던 점은 당시 정부의 새로운 정책의 대부분이 그의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민주공화당을 창당하며 기존에 없던 선진국형 정당 모델을 제시하였고, 워커힐 호텔 건설을 주도하여 초기 외화 수입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한일회담을 성사시키고 재산 청구권을 합의하여 국가 인프라와 중공업 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그는 1차적으로는 국민들의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해 산업 육성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이후 잘 살게 되면 민주화를 달성, 이후 복지국가로 이행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는 피가 아닌 빵을 먹고 자란다'라는 그의 말처럼, 경제력이 뒷받침되고 중산층이 주류가 되었을 때, 안정적으로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안 그의 혜안이었습니다. 압축 성장의 부작용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지만, 당시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고 다른 나라들의 선택과 비교해 보면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긴 정치사 속에 녹아든 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유신 독재 정권의 중심인물이었던 그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힘을 실어주면서 당선이 되며 민주화를 이루는데도 공헌 아닌 공헌을 한 사실도 흥미로웠습니다. 성공적이긴 하였으나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임과 유신 독재를 반대했지만 그를 외면하지 못하고 동참한 점은 오점으로 남을 아쉬운 점이지만, 매 순간 국가의 최선의 선택을 위해 행동했다는 점은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정도전을 연상케 하는 통찰력과 국가 기획능력을 보여준 그의 행보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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